미얀마 국경선을 따라 선교지를 찾아보았습니다. _ 정광흔 선교사님
👤 victory 📅 2012-12-03 17:26 👁 557
태국 지도 북쪽에서 보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미얀마 국경선을 따라 치앙라이주 치앙마이주 매홍손주 순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가 있던 곳이 치앙라이주 치앙라이시였기에 이곳에서 부터 매홍손주 매홍손시까지 미얀마 국경선을 따라 움직이면서 소수민족들을 보기로 마음먹고 지도를 사서 동선을 정한후 출발하였습니다.
치앙라이시 1번국도에서 밑으로 내려와 매라오에서 118번 국도로 우회전 매수아이에서 109번 국도로 우회전 107번 국도를 만나 좌회전 1249번 국도를 만나 우회전하여 올라가면 도이 앙캉이 나옵니다. 이곳부터 미얀마 국경선 쪽입니다.

매수아이 이곳에서 부터 산을 넘는데 지도상에 이곳이 너무 한가해 (매사이에서 매아이로 이어지는 북쪽끝은 너무 유명해서 )일부러 이곳을 택했습니다.

계속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이 109번 도로 높은 산 정상에 가까워질 때 옆에 난 조그만 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두 갈래 중 위쪽 길로 가보니 뜻밖에도 오래된 듯한 기독교식 마을 공동묘지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이곳을 오토바이를 타고 큰길을 따라 넘고 있지만 지금 이 109번 국도가 없다면 이곳은 아주 깊은 산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태국 기독교 22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오래전 이곳으로 왔을 선교사님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 졌습니다. 이길 윗 쪽이 묘지 아래쪽에 아마 마을이 있을 텐데 경사가 너무 심해 내려가면 올라 올 수 없을 거라 생각해 그냥 돌아 나왔습니다.

좀 지나 잠시 쉬려고 오토바이를 세웠는데 길 건너에서 소리를 듣고 누가 나와 봅니다.
나는 궁금해 안으로 들어갔는데 여자분 5분 정도 밭일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엔 약간 경계하는 눈빛이었는데 기독교 선교사라 하니 젊은 분이 금방 표정이 밝아지며 자신도 기독교인이라 하네요. 보다시피 꽤 넓은 지역을 마을에서 경작하는 것 같았고 아카족이라고 하는군요.

도이 앙캉쪽으로 올라가다 정상 근처인지 알고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아직 시작도 안한거였더군요.

1340번 국도 비행기 에서 보았던 구름을 땅에서 만났습니다.
중간에 두 번 정도 사람을 만나 물어보았는데 태국어가 능숙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미얀마 사람이라고 하는데 태국어를 하긴 하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았고 두 번째 분은 라후족이라고 하는데 역시 말이 잘 안통했습니다.

1340번 도로에서 1178번 국도를 만나기 전 미얀마로 가는 3거리 마을 (이름을 잊어 먹었음) 비를 만나 게스트 하우스가 있냐고 묻자 다행히 삼거리 오른쪽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곳 삼거리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고 특이한 것은 중국인들이 근처에 많았습니다.
물어보니 소수민족도 많이 있었습니다. 꽤 도시와 먼 마을이라고 생각했는데 태국 정부가 생각했던 것 보다 소수민족들에게 로얄 프로젝트를 잘 적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수철인지 전반적으로 바빴고 소수민족들도 정부와 잘 연결이 돼 있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소수민족의 삶은 너무 오래된 정보들이었다는 게 이번 일정에서 깨닫게 되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습니다.

1178번 국도에서 만난 마을의 학교 오늘이 운동회 인것 같았습니다. 사진 오른쪽편이 뒷문인데 12살 정도의 여자아이 둘이 문에 바짝 붙어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엘 다니지 않았던 거죠. 근처에서 남자아이들을 만나 학교에 안 가냐고 물으니 안다닌다고 하더라구요. 15살 안팍의 아이들이 할 일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교회가 있어 들어가 목사님을 만나보니 중국인 교회라고 합니다. 왜 학교에 안다니는 아이들이 있냐고 물으니 자신들이 공부하기도 싫고 부모도 그쪽에 잘 몰라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합니다. 요즘은 소수민족들도 좋은 학교에 보내려고 한국 선교센터에 보내는 부모들도 있는데....

위앙행으로 가는 길에 얼마 정도 비포장으로 표시된 부분이 있었습니다. 약간 걱정했는데 그리 나쁘진 않았습니다. 문제는 위앙행에서 빠이로 가는 길이 지도에 없었습니다. 치앙마이 시내 방향으로 한참을 돌아야 한했습니다. 도는 건 상관없지만 지도상으로 볼 때 ‘이 넓은 구간에 아무 마을도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이는 한 오륙년 전부터 엄청 유명해진 도시이기 때문에 지름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위앙행에 도착해 보니 역시나 길이 있었습니다. 내 예상이 맞았었습니다.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한 이십분 정도 길을 타보았는데 단 한사람도 오가는 사람이 없었고 비포장에 길이 너무 험했습니다. 돌아오다 내리막에서 바퀴가 홈에 미끄러져 빠지면 넘어졌습니다. 기어 내려오다 시피 천천히 내려오는 중이라 다치진 않았지만 인적도 없고 지도에 표시도 안돼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혹시 산중에 오토바이가 또 쓰려졌다 시동이라도 안 걸리면 정말 낭패다 싶었습니다. 돌아와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물어 길안내를 해줄 사람을 500받을 주고 구해 다음날 아침 같이 넘기로 했습니다.

잠결에 비오는 소리를 들으며 잠결에도 내일 비포장 산을 넘는데 비가 오면 안되는데 라고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사진 위쪽 길 정상쯤에 길안내를 했던 오토바이가 자세히 보면 보입니다. 역시 어제온 비가 문제였습니다. 산을 넘으며 두 번을 넘어졌습니다만 다행히 다치진 않았습니다. 길안내를 하는 오토바이는 오래됐지만 산악용 오토바이였습니다. 내 오토바이의 평범한 타이어로 산 마을들을 다니는 게 무리라는 걸 치앙라이에 있을 때 느꼈는데 바꾸지 않은 게 역시 문제였던 거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데 내리막에서 미끄러지는걸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오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한 내리막에 길 안내자가 뒤에서 내 오토바이를 잡아당기며 내려와야 했습니다. 길 안내자에게 이 길에 대해 자세하게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길은 위앙행에서 두 갈래 길이 있다. 우리가 탄 길은 왼쪽 길 초입에 이수족 마을이 하나있다고 하더라구요. 이 길을 가는 동안 이수족 마을 가기 전 오토바이 한대와 마주쳤는데 그 후 단 한사람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이 마을을 들어갔다 나오려 했지만 경사가 너무 심해 포기하고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이 왼쪽 길은 좀 더 험하지만 빠른 길이라고 하더라구요. 어제 내가 잠시 갔던 길은 오른쪽 길 정상에 초소가 있고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길이 있는데 그쪽으로 가면 라후족 마을 3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냥 직진해서 넘어오면 산 너머 카렌족 마을이 있는데 그 전에 두 길이 합해 진답니다. 이 길 안내자는 카렌족 마을 까지만 간다고 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다음은 혼자 가도 된다고 하더라구요.
나는 이 길을 빠져 나오며 돌아오는 길에 오른쪽 길을 타 라후족 마을로 가기로 마음먹고 빠이를 통과해 매홍손 쪽으로 달렸습니다.

치앙라이에서 만오천받에 구입한 빨간 오토바이(색깔이 여자가 타던 색이라서 망설였지만 중고라 선택의 폭이 좁았다)는 주인을 잘못만나 고생이 많습니다. 역시 이 타이어가 문제였습니다.

매홍손 쪽으로 가는 산세가 만만치 않게 높았습니다.
1226번 국도로 꺾었다가 시간상 돌아 나오려는데 라후셀레족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을 따라가니 마을 초입에 라후셀레 마을이 있고 그 안쪽으로 한 8개 마을이 더 있다고 하더라구요. 이 마을에 민박집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또 다른 라후셀레 마을이 있어 (이 지역엔 총 2개의 라후셀레족 마을과 그 안쪽으로는 타이야이 마을이 있단다) 들어 가 물어보니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목사님은 라후나(검은 라후)이고 마을은 라후셀레였습니다. 교인은 얼마 안되고 매홍손에 있는 한국 선교센터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이 일대에 이곳의 지원을 받는 데가 꽤 많다며 모르냐고 묻는더라구요. 다른 곳에서 목회를 하는 이 마을 출신 목사님도 부모님 추수 일을 도와 드리려 왔다가 한국 선교사가 왔다는 말에 궁금해 들렸다고 하더라구요. 셋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나보고 무슨 사역을 할지 물었습니다. 나는 심각하게 내가 돌아온 길에서 느낀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산마을에 학교도 없고 정부와 연결도 돼있지 않은 마을을 찾아가 유치부 아이들을 돌보고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시켜 학교도 보내고 그들을 도와주려고 왔는데 막상 돌아보니 꽤 깊은 마을도 다 학교가 있고 정부의 손길이 빠짐없이 미치고 있는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너무 오래된 정보인 것 같다 아직도 그런 마을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으니 그 목사님들이 아마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는 상당히 심각한 답변이었습니다. 선교 방향을 완전히 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매홍손시 쪽으로 가지 않고 빠이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위앙행에서 빠이로 넘어오는 길에 있는 라후족 마을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곳도 모든 게 갖춰져 있으면 선교 방향을 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보니 빨리 바퀴를 갈아야 할 것 같아 타이어를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런 타이어를 써본 적이 없어 빠이에서 매홍손쪽으로 오는 그 길에서 커브 길에 넘어졌습니다. 이 타이어가 포장도로에선 약간 로링이 있다고 했는데 어쨌든 실수를 했습니다. 비포장에선 넘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포장도로에서 넘어진 이번 사고는 왼쪽 팔꿈치와 무릎이 까졌습니다. 처음엔 혼자 소독할까 하다 병원에 가서 소독을 했습니다. 다음날 카렌족 마을 므엉 너이 로 향했습니다.

므엉 너이 마을 초입
이곳에 교회에 가서 목사님과 이야길 하고 길 안내자를 소개 받아 갈려고 맘을 먹었습니다.

교회를 찾으려면 높은 쪽을 바라보면 된다, 그런데 목사님이 부재중이다 이곳에서 만난 성도는 오토바이가 없다, 안쪽 라후족 마을에 가려면 얼마나 가야하냐 물으니 한 시간이면 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까지도 두 세 시간을 왔는데 혼자가자 맘먹고 출발했는데 생각보다 길이 험했습니다. 마을 초입에서 남자들을 만났는데 나보고 혼자 왔냐고 물으며 신기해했습니다. (이 마을에 있기로 하고 마을에서 돌아올 때 생각해 보니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 학교도 교회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여기서 두 시간을 더 가면 다른 라후족 마을이 있는데 거긴 오히려 학교가 있답니다. 이 마을 아이들은 부모가 밑에 카렌족 마을로 출퇴근을 시켜주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마을에 교회를 짓고(간단하게) 유치원을 하며 아이들을 돌봐도 좋겠냐 여기 살아도 되겠냐고 묻자 (마을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이 사람과 이야기 하라며 소개시켜 줬다) 그는 마을에 교회를 짓고 있어도 좋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 분들의 관심은 내가 살 집과 교회를 짓기 위해서 이 마을 분들이 일을 해야하고 일당이 200받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이득도 없다면 기독교인 하나 없는 이 마을에서 교회를 해도 된다고 하겠나 싶습니다.

이곳에서 하루를 자고 치앙라이로 돌아가 짐을 싸서 빠이로 다시 돌아왔는데 무릎에 상처가 덧나 병원에서 일주일간 매일 와 소독을 하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서 이틀간 발이 묶여있습니다. 이 마을은 라후니(붉은 라후)입니다. 라후니 부족의 유치원 선생님을 구해 들어가려고 치앙라이에서 이곳으로 오면서 여러 가지로 알아봤지만 구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소독약 세트를 샀습니다. 내일 아침 산마을로 들어가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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