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신줄을 놓고 말았습니다
제게 다가오는 차를 바라보며 '왜 저차는 내게 오지?'하며 정신을 차려보니 직진신호에 좌회전을 하고 있더군요
다행히 외지고 한갓진 시간이라 그차를 스쳐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동생의 수술동의서를 쓰고 왔습니다
결혼도 않은 , 아직 경험도 없음이 확실한 미혼의 동생은 다음주 자궁을 덜게 되었습니다
애써 무감각한 동생을 두고 의사에게 여러가지 항변을 했다가 찔끔 눈물을 흘렸지요
'왜 눈물을 흘리지?'자문하고 책망하며 생각했었습니다
정말 동생을 위해 흘리는 눈물인가? 스스로에게 화가나고, 동생에게 미안한 맘에 흘리는 눈물인가?
내 동생. 예쁘고 귀엽고, 소중한 내 동생.
정말 첫 동생이라 다른 동생들에겐 느낄 수 없는 행복감과 뿌듯함, 소중함을 준 동생이었습니다
다른 동생들은 솔직히 그만큼의 귀여움도, 애착도 없이 그저 의무감으로만 느껴졌었습니다
특히 막내는 엄마가 넌즈시 또하나의 동생의 가능성을 표시했을 때 차라리 내가 가출하겠다고 선언했고, 그 사실이 기정사실이 되었을 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힘에 굴복하여 내겐 처음부터 거부를 당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소중한 나의 동생, 나는 그 동생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중3무렵 몰락한 가계에 인천으로 이사를 한 후에도 나만은 서울 고모집에서 기거하며 학교를 다녔고, 그곳에서 고모를 잃고 "너 때문에 내 아내가 죽었어"라는 고모부의 말을 들으며 그 집에서 쫓겨난 후에도
저는 겨우 국민학교 3학년인 동생에게 나의 부담감들을 모두 떠넘긴채 집밖을 방황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더 어린 동생들과 치매걸린 할머니까지 묵묵히 인내하며 지내는 동생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었습니다
스스로 장학금을 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서울대, 그것도 약대에 입학한 동생이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지낼 때도,
원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취직하고 어려운 가계를 책임지고, 철부지 막내 뒷바라지와 중풍 아버지 병치레를 하는 것을 보고도 어쩌지 못하고 가끔씩 엄마에게 화풀이를 토해내는 것밖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정작 장녀인 나는 집이 싫고 부담스럽다고 말도 안되는 결혼을, 그것도 사랑도 없으면서 온갖 반대를 무릎쓰고 단행하고, 또 그 사슬에 매여 집에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늘 동생에게 나는 죄인이었습니다 못난 언니였습니다
너무 안타까운데, 미안한데 그 말도 두려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동생의 고등학교 절친이 얘기하더군요
동생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그런데 집이 너무 가난해서(우리 집) 그냥 포기했다고요
그말을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었습니다
아직까지 그 친구 외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저 가슴에 묻고 있는 동생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아는 척도 못하는 내게 화가 났습니다
도움도 못주고 온갖 책임을 안겨버린 그 동생에게 저는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한번도 도와달라고 말도 꺼내지 못하지만
그 동생은 스스로 알아서 제 딸들을 살갑게 챙기고, 공부가르키고, 가끔은 제게도 물질적 도움을 줍니다
저는 그저 고맙다는 말만으로 그 도움들을 받고, 아이들에 대한 것은 그냥 모른 척 하기 일쑤입니다
오히려 제 큰딸이 동생곁에 있는게 어쩌면 동생에게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는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대며...
동생이 수술을 한다네요
마흔이 다 되도록 제대로 여자인 적이 없던 동생이 자궁을 덜어낸답니다
나는 그저 지켜볼 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지금 내가 흘리는 눈물은 동생을 위한 것이 아닌, 바보같은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일 겁니다
처음에는 계속 슬플 줄 알았습니다
병원을 나오고, 싫다는 동생을 굳이 직장근처로 데려다주고, 상담약속이 잡혀있는 학생을 어찌 만나고 대해야 하나 걱정했었지만, 곧 까마득히 잊고 일상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퇴근시간이 되었는데 상담실을 쓰겠다고 약속하곤 연락도 안되고 오지않는 상담교생들에 화를 내며 초조해하다, 결국 처음보는 학생들에게 상담실을 맡기고 서울로 올라오면서도 뭔가 모를 미칠 것 같은 분노만 느꼈습니다
빅토리...
수업을 마치며 돌아오며 이런 저런 생각들이 머리속에 떠올랐습니다
이번 주에는 못 이긴 척 나눔에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각본도 짰습니다
빅토리...
숙제도 하지 않고, 마냥 게으름을 피며 저항하는 절 느끼면서도 그래도 '이곳아님 난 죽어' 단 하나만 생각하며 그저 그곳에 가는 것만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치료.
사실 작년에는 목사님의 쉬라는 권유가 아니었어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날 공개하는 것이 두려워 호기심을 누르며 연극치료 참석을 피했습니다
이번에도 제가 노출될까 애써 저항하는 절 발견하곤 합니다
한쪽발만 담금
그것도 살짝
지난 번엔 "선녀와 나무꾼"을 했죠
스스로 "선녀"가 되면 감정이입이 될까봐 애써 "나무꾼"역을 맡았습니다
5살 정도의 어린 소녀가 계속 맘에 걸립니다
그 소녀는 표정도 없고, 얼굴도 없습니다
마치 "센과 치히로"에서의 얼굴없는 귀신처럼. 순간 그 소녀를 떠올리니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습니다
5살의 내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각하니 동생이 생겼습니다 그저 그것외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늘 집으로 오는 길, 문뜩 5살 무렵의 제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이 느껴졌었습니다
5살. 그전에는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느날 몇년간 베트남에 가계시던 아버지가 돌아왔습니다
권위적이고 전형적인 경상도 사나이 스타일의 아버진 제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에서 서울로의 이사를 감행했고
어렴풋한 기억 중의 하나는 집에 참 많은 손님이 있었습니다
삼촌은 무척 화가 나 엄마에게 역정을 내고 있었고(물론 정면에 대고 화를 낸 것이 아니라, 혼자 화를 내고 있는 삼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순간엔가 그것이 엄마에 대한 화였다고 기억이 다시 짜맞추어 졌습니다)
그리고 좀 오랜 시간이 흘러 그때 장면들이 다시 짜맞춰지며, 그것이 역시 기억에도 없는 내 친할머니의 장례식이었고, 그곳에서 장손인 맞며느리임에도 시모의 주검앞에서 종교를 이유로 절하지 않는 엄마에의 힐난들로 완성되었죠.
그때였을 것 같아요. 잘은 모르지만 이곳 저곳 어른들 속을 오가며 아마도 나는 처음
얘기를 들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이후 자주 친척들 사이에서 양쪽부모들을 힐난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어쩌면 그곳이 처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오늘 문뜩 들었습니다
니 아버지만 안만났으면 니 엄마는 훨씬 좋은 곳에 시집가서 호강하며 살텐데...
맞며느리를 잘못 들여서...
저는 칠삭동이 입니다. 이 사실도 늦게, 고3인지, 대학교 때인지 문뜩 든 것인데(저희 부모님은 9월에 결혼했고, 저는 4월생입니다) 아무튼 너만 아니였으면 니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을텐데 하는 소리를 혹시 어른들 사이에서 제가 듣지나 않았을까요?
제 존재를 부정하는 어른들의 말들을 어쩌다 제가 듣고 혼란에 빠졌던 건 아닐까요?
그런 말을 들었던 것조차 제가 잊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제가 1년중 가장 감정이 다운 되는 시기는 제 생일주간입니다. 바로 요즈음.
돌이켜보면 왜인지 이유도 모른채 급우울해지는 시기가 요즘입니다
혹시 5살 무렵의 저는 어른들 틈에서 "너때문에"라는 수식어를 붙인채 양측부모를 비난하는 힐난들 속에서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혹시 5살 무렵의 저는 "너 때문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또렷이 기억하는 또다른 어린 시절의 모습. 남대문 시장에서 엄마의 친구가 호의를 갖고 사준 미제젤리를 억지로 먹고, 웃음지며 고맙다 인사하고 돌아서서 시장을 뒹굴며 떼를 쓰며 울던 내 모습...
저는 "싫어, 싫어"라고 소리친 것 같습니다
물론 엄마친구로서 제게 그당시로는 신기하고 최고라 여겨지는 것을 주고싶어하는 맘은 이해하지만, 내가 원치 않는 것이라는 강한 반발감(여기서 혹시 제가 그전에 젤리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있었을까 되짚어보지만 떠오르진 않고), 그럼에도 좋은 척, 고마운 척 연기해야 하는 것이 너무 싫어서 그러지 않았을까?
어른들 속을 오가며 다른 상대방 부모를 힐난하는 것을 듣지만, 또다른 상대편 친척들 사이에선 또다른 상대편 부모의 힐난을 듣고, 그 양쪽을 오가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해야 했던 어린 나는 그렇게 나의 힘듦을 항변한 것은 아닐까?
중3때 고모를 보내며 "네가 죽였어"라는 고모부의 말을 듣고 쫓겨와, 동생들을 데리고 잠들던 밤, 마치 유령에게 이끌려 이세상을 내려보며 떠날뻔한 비슷한 꿈을 3번이나 연속으로 꾸던 그때에도
"네가 아니야", "네가 고모를 죽인 게 아니야"라는 말을 사실 간절히 듣고 싶었던 것처럼
5살무렵의 나도 "너 때문이 아니야",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나때문에 양부모의 불행한 결혼이 이어졌다는 존재의 부정때문에 이렇게 생일우울에 빠지는 것은 아닐까요?
저의 추리가 억지일까요?
혹시라도 맞다면 5살의 나를 만나야 되겠지요?
그 아이에게 "너때문이 아니야"라고 말해주면 될까요?
어떻게 만나, 어떻게 얘기해주면 될까요?
요즘은 아이들을 만나 정말 속으로는 너무 맘이 쓰라려오며 아이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너는 소중해" "너는 정말 소중한 존재야"
그런데 제게는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제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게을러지고, 과제수행을 못하고, 치유를 거부하고...
만나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맘이 듭니다. 저도 못하는 주제 어떻게 아이들에게 그걸 믿으라는 거야!하며 제 모순을 발견합니다.
참 힘드네요
열쇠가 무얼까요?
감사합니다. 되도 않는 소리 이렇게 주절거릴 수 있게 용기를 주심을. 하소연할 대상이 있다고 믿게해 주심을. 그리고 끝까지 읽으셨다면 읽어주심을.
